민병헌 Min Byung Hun

Artist, Photographer

   민병헌(1955~)은 40년간 흑백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를 지속해 온 사진 작가다. 움직이는 시간과 정지된 시간 안의 자연과 사물, 인체의 본질을 아날로그 카메라로 기록한다. 카메라로 대상을 포착하는 순간부터 암실에서 완성 작이 나올 때까지 타인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시키며 작업한다. 일체의 연출이나 작위가 없는 사진술의 본질적 메커니즘에 의지하는 스트레이트 포토그라피를 추구하지만 민병헌 특유의 사색적 서정성과 독자적 세계관은 사진 매체의 특성을 뛰어 넘는 미적인 체험을 가능케 한다.

   민병헌 사진작가는 독학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촬영부터 인화까지 모든 작업을 직접 진행하고자 아날로그 작업 방식을 유지한다. 40여 년간 작업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어시스턴트를 포함해 어느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고, 스트레이트 기법의 흑백사진과 젤라틴 실버 프린트를 고수한다. 까마득한 풍경의 숲 사진에서도 자연의 숨결이 세세하게 전해진다. 사람의 뒤태를 표현한 누드 작업을 보더라도 결코 단조롭지 않다. 작가 소개 글에 ‘민병헌 그레이’라는 수식어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유다.

   ‘Weed(잡초)’ 시리즈는 1991년부터 1996년 사이에 새벽 이른 시간 서울 근교의 농가를 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비닐하우스 틈새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풀들을, 재료나 기법의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이다. 생명이 자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위로 아래로 옆으로 제 힘 닿는 대로 자라고 있는 풀잎들이 그려내는 선 하나 하나에서, 민병헌은 문득 자신의 온 촉각을 일깨우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민병헌의 대표작으로는 연작 시리즈인 [Deep Fog], [River], [Snow Land], [Waterfall], [Sky], [Body], [Moss]등이 있으며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시카고 현대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프랑스 국립조형예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뮤지엄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비평

  민병헌의 작품을 마주하면 ‘희미함’이란 단어가 맨 처음 떠오르고, 흐르는 시간, 지금은 사라져버린 잊혀졌던 감각들이 느껴진다. 그는 동양적이며 동시에 서구적 회화 전통에 기반을 둔 채 ‘자연’을 주제로 일련의 시리즈로 작업을 꾸려나간다. 눈 덮인 산야, 안개 낀 도시와 들녘의 하늘, 갈대 숲, 어둠, 나신(裸身)등 실재 현실의 풍경은 그의 ‘순간 포착’으로 담겨지며, 이어서 섬세하고 덧없는 감동의 추상화로 발현된 독특한 이미지로 창조된다. 

   민병헌의 관심사는 자연의 변형, 그 변신으로서, 예를 들어 식물, 비, 바람, 폭풍, 눈, 피어나고 사라지는 안개 등에 대한 작가만의 재해석을 통해 작업에 이르는 것이다. “자연이 거기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거기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거나, 모습을 바꾸면, 우리는 그제서야 거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오로지 결핍의 순간에만 다시 기억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대단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 사소한 것,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자 하며, 그것들을 정말 몸소 느낀다.” 이렇게 민병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음미하고 느끼며, 자연과 일체가 되는 자신만의 열정적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민병헌은 오직 흑백으로 작업한다. 비단처럼 윤택하고 은은한 회색조와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은 시적이고 세련된 그의 창작세계를 한층 더 강화시키며, 마치 한 폭의 수채화나 서예 작품을 보는 듯 거의 동일한 미감을 뿜어낸다. 작가는 본인의 작품을 “새벽녘 입안에 남은 전날 밤 꿈의 맛과 닮았다”고 표현한다. 모든 것이 그에겐 감각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 그 순간을 프린트 과정에서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관건이란 것이다. 그는 1998년 이래로 서울 집에서 양평군 서정면 문호리 작업실을 오가며 <안개> 시리즈를 구상했으며 마침내 완성했다. 일출과 일몰에 맞춰 강가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그의 길을 뒤덮고, 식물과 가옥, 자욱하고 빽빽한 하얀 운무 속에 파묻힌 산봉우리를 연기처럼 채운다. 

                                                    – 엠마누엘 드 레코테 (파리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우리는 개인의 감성적 경험이 서사를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측량 가능한 공간의 시대를 뒤로 하고 개별화된 시공간에 대한 해석이 중요한 시절에 이른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활용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경험을 차별화하는 감성이 행동을 변화시키기에 이르렀으며, 무엇에 어떻게 몰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문제가 되었다 

(중략)

   섬세한 감성의 표현이라는 면에서 민병헌은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 만큼 강한 집중력과 흡입력을 보여왔다. 그는 차별적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공감시키는 사진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톤의 재현은 흑백사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체 특정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만이 느끼는 자연에 대한 찬사이고, 말로는 이루기 힘든 타인과의 교감이다. 

    풍경에 대한 예술적 해석이 원초적인 시공간 경험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실존적이라는 지적은 민병헌의 경우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별거 아닌 풍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섬 Island>, <잡초 Weeds>, <깊은 안개 Deep Fog>, 그리고 <Snow Land>와 <숲 Trees>에 이르기까지 민병헌은 전형적인 자연의 소재들을 다루어 왔다, 평범한 소재를 사유화하기 위해 그가 고집하는 방법은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 프로세스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듯 하얗게 부서지는 찬란한 나뭇잎, 부드럽게 번지듯 스며드는 짙은 어둠의 숲, 심연처럼 온 세상을 감싸 안은 짙은 안개를 담은 흑백의 계조는 소재를 뛰어 넘는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에게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을 주어왔다. 

   그의 작품에서 흑백의 계조는 평범과 비범, 일반과 개별을 구분하는 중요한 표현요소이다. 흑이나 백으로 치우쳐진 영역에서 세밀한 밝기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법을 쓰거나 중간 회색을 기준으로 풀스케일(full scale)의 풍부한 계조를 선택하거나, 그는 온전하게 자유롭다. 자연 앞에서 그가 느낀 바에 따라 톤을 조정하는 것은 그 미묘하고 섬세한 몰입의 경지가 감탄스럽다보니 자유롭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사진이 흑백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회색조로 전환된 세상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육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병헌의 흑백사진에 담긴 자연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사진 앞에만 서 있어도 작가가 겪어낸 엄밀한 선택의 순간들이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자연을 마주하고, 나만의 자연으로 만들기 위해 교감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재단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고, 인화지 위에서 한 번 더 은염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한 장의 사진마다 생생하다. 

 

                                                    –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소장처

산타바바라 미술관, 산타바바라, 미국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미국

휴스턴미술관, 휴스턴, 미국

현대사진미술관, 시카고, 미국

로스엔젤레스미술관, 로스앤젤레스, 미국

하와이현대미술관, 하와이, 미국

국립조형미술관, 파리, 프랑스

Brookings Insitution, 워싱턴, 미국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대한민국

예술의 전당, 서울, 대한민국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대한민국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대한민국

대림미술관, 서울, 대한민국

금호미술관, 서울,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대한민국

경기도미술관, 안산, 대한민국

국립 조형예술센터, 파리,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