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섭 Moon Seup Sim

Artist

 심문섭의 작품은 생성과 소멸, 존재와 시간, 응집성과 개방성, 공존성과 기변성을 그대로 품고 있다. 끝없이 붓질을 반복하여 상반되는 두 재료가 혼합이 되어, 캔버스라는 사각 틀 위에서 감추는 것과 드러내는 것을 반복하여 그리는 행위에 의해 사라지거나 덮여버려 찾아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조성이 된다. 이러한 순환과 반복의 과정을 통해 자신들만의 질서와 소통을 만들어 표면에 새로운 세계가 드러나게 한다.

 심문섭 작가는 지금까지 물()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고향 통영 앞바다의 풍경을 빌려온 차경(借景) 개념을 통해 물()을 통한() 조각의 정신을 확장하며 독자적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최근에는 회화로까지 작업 반경을 넓혔는데, 반복된 붓질로 완성된 그의 작품은 바다의 이미지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연속적으로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이미지에서에너지를 화면에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윤환의 시간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기도 하다푸르다 못해 검푸름이 된, 세로로 그은 붓질 만으로도 관객들을 바다의 심연 속으로 잠기게 한다.

 풍경화가 바다를 그림에 가두는 것과 달리 패턴이 된 바다는 캔버스 밖으로 퍼져 나간다. 심문섭의 회화는 팽창하는 특징을 갖는다.  심문섭의 회화는 거의 모두 유성 물감으로 밑칠을 하고서 그 위에 수성인 아크릴물감을 덧칠하는 방식이다. 넓은 페인트 붓으로 반복되는 붓질은 조각가의 끌질과 본질적으로 같다.

작가노트

 

 그림은 내재적 장소성에 의해 스스로를 규정하는 형식으로 성립된다. 그림은 조각과 달리 주변 공간의 여향을 받는 일이 드물어 독립국처럼 고고하게 존재한다. 그림을 관람하는 측도 독립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림 자신도 자주성을 존중하며 이 양 측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나는 그림에 담긴 깊이, 애매성, 리얼리티, 허구성 같은 풍부한 조형성이야말로 바다의 생리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캔버스라는 사각 틀 위의 그리는 행위에 의해 사라지거나 덮여버려 찾아내기 어려운 무엇이 한층 더 깊게 드러나길 바란다. 감추는 것과 드러내는 것을 반복하며 붓을 들고 긋기를 계속하는 행위는 끌로 나무를 내려치던 일처럼 낯설지 않다.

 

 나의 그림에는 드로잉의 에너지와 드로잉의 리듬이 어느 곳으로부터 다른 어느 곳으로 나아간다. 이때 드로잉에 실려 뻗어 나가는 운동성은 상호 흡수되거나 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됨으로써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간다. 고정된 틀을 벗어나는 자유로움은 마치 밀리고 밀려오는 파도처럼 연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퍼덕이는 생동감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의미의 흐름을 담아내고 싶다. 대상을 표현하면서도 그 의미도 새롭게 만들어 재현 너머의 세계까지 그려내고 싶다. 나에게 그림은 사각 틀 속에 갇혀 있는 사물이 아니다.